[낚시] 마법사 찬가.

SICP란 책의 표지에는 마법사가 그려져있다. 책의 내용은 "structure and interpretation of computer programs"란 제목처럼 컴퓨터프로그램에 대한 기초(그렇다고 어느시점엔가 잊어버릴 그런 무의미한 '기초'가 아니라 프로그램을 작성한다면 언제나 잊지 말아야할 기초로서.)를 설명하는 책이다. 책의 처음 어느부분에서인가 어째서 마법사가 표지로 선택되었는가를 설명하고 있다.

"...마법사는 알수없는 기술을 사용하여 이 세계에 영향을 끼친다... 프로그래머 또한 프로그래머가 아닌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기술들을 사용하여 이 세계에 영향을 끼친다..."

나는 이 말에 최근 불거져 나오는 IT위기론이나 이와 관련된 업계의 공통된 문제들에 대한 대답이 숨어 있다고 생각한다. (유치찬란하게 남들이 모르는 길로만 다녀서 자신의 밥그릇을 지키라는 따위의 소리는 아니다. 기대하지 말것.)

소싯적에 다들 게임 좀 했겠지만 패키지 게임을 몇개나 구입했는가? 그리고 자신이 즐겼던 모든 게임의 패키지를 구매했었나? 게임관련 업체들은 왠만해서는 패키지를 출시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것이다. 여러가지 이유와 설명이 있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이유는 게임이라는 특성이 부여하는 관계와 영향력의 제한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게임 패키지를 많이 파는 것도 좋지만, 아예 사지 않으면? 많이 양보해서 사지 않는 것도 좋지만 그저 그와의 관계가 복사해버리고 땡~이라면?) 그리고 무엇보다 게임과 같은 영역이 더욱 복제에 민감한 것은 그 특성상 아마 영원히 따라다닐 다음의 질문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뭐?(so what?)"

예를 들어 회사에 꼭 필요한 솔루션의 구매와 개인적인 게임의 구매 사이에서 갈등이 있을수있다. 상식적인 경로는 아쉽지만 전자를 선택할것이고, 후자를 선택하는 경우에는 대인배라는 얘기는 듣겠지만 어느정도 인생에서 어느 부분을 포기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그런것이다. 게임이나 야동은 없으면 서운하지만 '그래서 뭐?'일수있다. 하지만 개발자의 입장에서 지루해보이고 도전이라고는 눈씻고 찾을 수 없을것 같은 회계분석, 경영통계 등등에 관련된 솔루션들은 '그래서 뭐?'가 아니다. 그러한 솔루션의 존재와 적용여부에 따라서 엄청난 비용을 절감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더 큰 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것이다.

게임을 예로 들었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을 수 있다. 얼마든지 성공적인 게임도 있고, 그와 관련된 가치도 어마어마하니까. 하지만 결국 내 경력의 성공이건 내 프로그램의 성공이건,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얼마나 깊게 연관을 맺고 어떻게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가가 문제인것이다.(아무도 하지 않는 게임은 개인적인 의미 이외에는 찾을 수 없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기에 아직도 이런 '제대로된' 관계와 영향을 필요로 하는 분야는 충분히 많다고 생각한다.

이번엔 웹을 검색해보자, 수많은 성인사이트들과 까페들, 동호회, 커뮤니티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과연 그들중 몇이나 그 조직의 몸집을 감당하고 성장할 가능성이 있을까? 요행에 기대어 행운이 불어온 몇군데를 제외하고 나머지는 그 사라질 날만을 바라보고 있고, 그나마 흥했다고 하는 그런곳들도 제 아무리 성공을 했다 하더라도 먼 미래를 장담하기 힘들다. 하지만 반대로 제대로 활성화된 어느지역에서건 관계없이 업체에 관계없이 필요할때 바로바로 렌트카를 빌릴 수 있는 사이트가 있던가? 혹은 렌트카 업체를 운영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어떤차가 언제 예약되어 있고 어디로 나가있고 고객의 마일리지가 얼마인지 파악할 수 있는 소위 말해서 '죽여주는' 전산화 솔루션을 찾을 수 있는가?(후자는 아마 검색하면 수십건의 나오겠지만 아마 그 업체는 관리를 하지 않고 있을것이다. 이미 그와 유사한 아이템의 프로그램들을 열댓개 정도 만들어 한 카피당 얼마, 혹은 월 관리비 얼마하는식으로 장사를 하고 있을것이고, 당연히 프로그램은 수정보완도 없고 처음 릴리즈할때와 별반 다르지 않게 현실과 동떨어진 업무기준으로 작성되었을것이고 버그가 산재해있을 가능성도 높고, 엑셀이나 수기와 병행하여 이용하는 것이 당연할것이며, 그것도 아니면 대학생 아르바이트로 만든 30만원짜리이거나 그것과 모양 이외에 다른 부분이 어떤곳인지 짐작하기 힘든 '외주'솔루션일것이다...) 이상하지 않은가? 성인사이트와 커뮤니티가 없다고 누가 흥망하지는 않는다.(성인사이트가 사라지면 삶의 의욕을 잃을수는 있겠지) 하지만 실제 업무를 전산화하고 이를 현대화하는 영역은 아직도 대부분의 시장에서 걸음마 단계이고 그 인식도 미비하다고 생각한다.

전산화를 도입하는 업체의 입장에서는 거의 98%의 확률로 다음과 같은 말들을 중얼거린다.(약발도 없는 주문들인데도)

* 차라리 수기가 더 빠른데.
* 저희하고는 맞지 않는것 같아요.
* 이거 왜 이렇게 복잡하죠?
* 전산이 틀린것 같아요.

이런 사람들이 진정되고나서 몇개월쯤 후에 심심하면 서비스를 잠깐 내려보라. 그리고 전화를 받아서 다음처럼 대답해봐라.

"잠깐 수기로 처리하시면 안될까요?"

사용기간에 비례한 정도로 이 사람들은 자신들이 어떻게 그렇게 느리고 복잡하고 부정확한 작업을 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큰 목소리에 섞어서 (가끔 적절한 욕설도 더해서) 토로할 것이다. 이들은 진정한 고객이 된 것이다. 아편은 정신과 육체를 좀 먹는다. 고객은 그 정신과 육체가 나약해질수록 아편상인에게 기댈것이다. 아편상인은 처음엔 고객에게 천대를 받지만 나날이 영향력이 커질것이다. 향정신성의약품을 팔아먹고 범죄자가 되거나 사람들을 파멸시키라는 말이 아니라는건 누구라도 알겠지. 처음 전산을 도입한 업체는 힘들고 솔루션을 제공한 업체 또한 괴롭다. 하지만 그 시점을 회피하고 다른 시장으로 넘어가는 것은 어리석다.(수많은 아종 솔루션을 보유하면서도 밥벌이를 제대로 못하는 대부분의 업체들이 그렇다고 생각한다. 한 시장을 제대로 파악하고 그에 맞춰 솔루션을 발전시키지 않고 초기 투입금액만을 쫓아 이동하는. 언제까지 그렇게 '찍어내기'를 반복할 수 있을것 같은가?) 하지만 그 시점이 넘어간다면 업체는 다른 투덜거림을 찾아낼것이다. 이때부터는 그 업체와 솔루션제공자는 함께 성장하고 있을것이다. (예를들어, 솔루션 도입전에는 재고파악조차 못하던 업체가 재고가 맞지 않는다고 투덜거리는것은 듣기에 싫을 수 있지만, 그 업체로서는 분명히 발전이다. 이제는 어디서 뭐가 비는지는 파악할 수 있다는 뜻이니까.)

별거아닌 사람으로서 그냥 생각을 정리해봤다. 당연히 성공에 더 중요한 요소도 많이 있을것이고 언급한 것들을 모두 실현했다고 하더라도 실패할 가능성도 그다지 낮아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전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나 만화영화에서처럼 자기자신의 눈물로 호수를 만들고 빠져죽는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 글을 남겨본다.(최근의 '닭집이나 차리자'에 붙여서.)


...선택하라고 할수는 없을것이다. 그저 강 건너에서 바라본 떠나온 마을이 이 세상의 전부가 아니었다고 담담하게 말할 수 있을것 같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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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겔 | 2007/08/15 21:27 | 5.1ch DogSound | 트랙백(1) | 핑백(1)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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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인사이트 at 2007/10/23 19:14

제목 : 프로그래밍의 원리를 알려주는 책 - SICP
안윤호 님의 글을 보면 조엘 스폴스키(Joel Spolsky)가 SICP에 대해 불평하다 재평가했다는 얘길 하고 있죠. 그런데 최근 번역서가 나온 조엘의 『Smart and Gets Thing Done』에서도 SICP를 다시 거론하고 있네요. 조엘은 이력서 선별 기준으로 “컴퓨터에 열정을 갖고 프로그래밍을 정말 좋아한다는 뚜렷한 증거를 찾으려 애쓰며.... 그런 판단의 근거” 중 하나로 컴퓨터 프로그램의 구조와 해석을 읽고 진한 감동을 받아서 ......more

Linked at yongbin님의 글 - [2.. at 2007/08/16 16:21

... 0 metoo 나는 아편장사다 @_@ 오후 4시 21분 ... more

Commented by Bin at 2007/08/16 00:24
약 반년전부터 개인적으로 소규모 '아편장사'를 하고있는 사람입니다. 제가 평소에 가지고 있던 생각과 비슷해서 이 포스트를 두번정도 정독했습니다. 말씀하신것 처럼 세상은 실재로 IT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이 생각하는것만큼 전산화되거나 현대적으로 업무처리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직접보고 깨닭는데 꽤 많은 시간이 걸렸던것으로 기억합니다. IT가 내부적으로 "이미 시장이 포화 상태다" 라고 말 하지만 실재 기술보다 중요한건 그런 관념을 깨고 '제공할수 있는 가치'를 발견하는 능력이 개별적인 기술의 우위보단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일단 lock - in 에 성공할수 있는 시장에 단독으로 뛰어들었다면 사실 아편의 질은 크게 중요하지 않은것 같습니다 일단 당장 필요한 급한 핵심적인 기능만 제공하고 나면 그 뒤부터는 말씀하신것 처럼 고객과 공급사가 함께 발전하는것이니까요, 하지만 또 항상 개인적으로 "좋은시절은 오래가지 않는다"는 말을 자주 상기합니다. 어떤 상황 어떤 규모에 어떤 능력을 가진 미래의 경쟁자가 나타날찌 모르는 상황이기에 "좋은시절"일때 최대한 사람들을 잘 중독시키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면 안될것 같습니다. factorial language나 minor 한 동적 언어들에 대한 포스팅들을 잘 보고 있습니다 그냥 평소 고민하던 문제와 비슷한 내용이라 인사겸 잡담남깁니다.
Commented by 아겔 at 2007/08/16 01:12
댓글 감사합니다. 말씀하신바대로 선두로서 시장에 진입, 혹은 진입 자체도 중요하지만 그 시장의 판도를 재편성(진입을 일찍하였더라도 그 시장과 부합하지 못하였거나 하는.)을 성공하거나한 업체라면 분명 유리한점은 있겠지만, 다른 경쟁자가 나타난다면 그때부터는 기술력이라든지 또 다른 변수들의 영향이 커지겠지요. 잘 중독시키려면 사람됨을, 그리고 상대를 잘 파악하고 상대에 맞게 배려할 수 있는 능력도 중요할것 같습니다. (제가 많이 부족한 부분입니다.)

'좋은한때'에 견재를 위한 투자와 노력을 게을리하면 안되겠구나'라고 당연한것이지만 댓글을 보고 뜨끔했습니다. 자기 채찍질을 놓치면 안되겠구나 생각하였습니다.

가끔 들러주시고 별볼일없는 글들에 댓글 달아주시기를 기대하겠습니다. :-)
Commented by Bin at 2007/08/16 12:55
사람됨을 갖추고 상대방를 잘 파악하며 바려하는 능력을 갖춘다면 어떤일을 하더라도 대성할수 있지않을까 생각합니다 ^^ 좋은 덧글 감사합니다 ps. 참 SICP의 마법사 == 프로그래머 비유를 인용하신걸 보고 김국현님의 카툰이 생각났습니다 http://goodhyun.com/archives/2007/08/676.php :) 좋은하루 되세요!
Commented by 아겔 at 2007/08/16 13:58
ㅋㅋ 눈물이 쏙빠지게 고생할때 다 그만두고 싶죠.

폭염이라는데 건강 유의하시고 좋은하루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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